6월4일문학상 근로자들의 창작열의 높여준다

🎦 은파군 초구리의 농장원이자 문학통신원이였던 변우순동무가 쓴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에 기초한 예술영화 《땅과 말하는 처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문학의 대중화는 인민대중을 문학의 진정한 창조자, 향유자로 되게 하기 위한 사업이다.》

주체71(1982)년 3월에 제정된 6월4일문학상은 사상예술적으로 훌륭한 문학작품을 창작한 근로자들과 청년학생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6월4일문학상은 해마다 6월 4일을 계기로 한해동안 창작된 작품들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소설, 시, 아동문학, 극문학, 평론작품들을 선정하여 그것을 창작한 대상들에게 수여한다.

지난 기간 6월4일문학상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명작창작의 푸른 꿈을 키워주었으며 광범한 대중속에서 문학창작열의를 비상히 높여주었다.

수많은 작품들이 6월4일문학상과 더불어 명작으로 되였으며 평범한 근로자들이 이 상을 받고 쟁쟁한 문필가들로 성장하였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일군의 말에 의하면 지난 기간 수십명의 문학통신원들이 6월4일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문학상의 첫 수상자들가운데는 삶의 순간마다 언제나 그 언제나 백두산에 오르리라는 내용의 명시를 남긴 한 처녀선반공도 있고 시대정신과 농민들의 열정넘친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한 단편소설 《땅과 말하는 처녀》를 내놓은 은파군의 평범한 농장원도 있다.

구성방직공장의 한 열관리공은 문학통신원들을 위한 단기강습에 참가하여 당의 문예방침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전문가들의 지도밑에 서정시를 창작하여 이 문학상을 받았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평범한 로동자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워주는 고마운 제도를 노래하고싶어 펜을 들었지만 욕망뿐이였다. 그때 평안북도작가동맹위원회의 작가들이 공장에 내려와 저의 창작을 지도해주었으며 공장사람들도 지혜를 합쳐주었다.

그들의 방조가 없었더라면 문학을 갓 배운 내가 어떻게 6월4일문학상을 수여받을수 있었겠는가. 정녕 고마운 우리 조국이 나의 꿈을 키워주고 빛내주었다.

어찌 그만의 심정이라 하랴.

수십년전 황해남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교단에 선 20대 교원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도작가동맹위원회의 일군을 통하여 문학통신원들은 작가의 개별지도와 문학수업을 정기적으로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는 지방의 한 교원의 희망도 따뜻이 헤아려주는 고마운 조국의 사랑을 페부로 느끼며 창작활동을 순간도 멈추지 않았으며 그 나날에 6월4일문학상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강동군의 어느한 농장에서 농장원으로 일하던 한 청년은 서로 돕고 위하는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시를 창작하여 6월4일문학상수상자가 되였으며 그후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많은 시를 창작하였다.

6월4일문학상수상자들가운데는 특류영예군인도 있다.

두다리와 한팔이 없는 그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는 시를 창작하게 된 비결에 대하여 그의 안해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의 남편에게는 오랜 세월 수시로 집에 찾아와 창작수업을 도와준 고마운 스승들이 있습니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들의 방조속에 남편은 성한 사람도 쉽게 도달할수 없는 높이에 이르렀습니다. 남편이 쓰는 한편한편의 시는 고마운 우리 조국에 대한 불같은 사랑의 분출입니다.》

이들만이 아니다. 탄광과 광산의 로동자들과 대학생들을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이 6월4일문학상을 수여받았을뿐 아니라 오늘은 대학의 교육자로, 작가로 자라났다.

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지니고 명작을 창작하기 위하여 지혜와 재능을 적극 발휘한다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누구나 군중문학통신원이 될수 있고 6월4일문학상수상자가 될수 있다.

누구나 6월4일문학상에 깃든 우리 당의 크나큰 은정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들끓는 현실속에서 끊임없이 붓을 벼리고 달릴 때 우리 문학예술의 화원은 더 풍만해지고 밝은 래일에로 향한 우리의 전진은 더욱 빨라지게 될것이다.

본사기자

🔎 원문: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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